죽음의 운명 알면서 트로이전쟁 참전한 아킬레우스
‘혁신’ 위해 블록체인 목숨 거는 은행 운명 비슷해

비트코인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원천기술 블록체인은 2016년의 핵심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각국의 대형은행은 물론 증권거래소들은 보안 및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블록체인이 갖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영국의 ‘이코노미스트’紙는 지난해 연말에 이어 3월에도 블록체인에 대한 무게감 있는 기사를 실으면서 최신의 금융트렌드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두 편의 기사에서 느낄 수 있는 질감은 정반대이지만 말이다. 그만큼 시대적 관심사로 블록체인이 뜨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2015
지난해 특집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을 ‘신뢰를 만들어내는 장치’로서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평가한 바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은 투명하고 수학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새로운 기록 관리 방식의 출현이라는 측면에서 개인 및 기업이 협력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은행, 중앙청산소(예 결제원, 예탁원 등), 정부기관 등 (그동안) 신뢰를 제공하는 사업을 영위하던 기관들은 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그동안 공공성을 무기로 금융거래의 핵심역할을 했던 정부기관 및 대형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 기술에게 그 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의 기술이 그 신뢰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2016
이렇게 보도했던 ‘이코노미스트’가 올 3월 보도에서는 “블록체인이 한낱 유행에 그치지는 않겠지만, 확산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지난해의 뜨거웠던 기사 분위기와 달리 차분한 보도 톤을 유지했다.

물론 ‘이코노미스트’가 블록체인을 혁신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제기됐던 ‘확장 가능성(scalability)’과 ‘보안’ 문제를 들어 금융권의 폭발적인 관심만큼 쉽게 퍼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회사차원이 아니라 산업전체의 협력 내지 정부기관과 산업의 협력이 담보돼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간에 가지고 있는 미시적인 차이를 조정하면서 큰 틀에서의 블록체인 표준을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블록체인 기술 대중화에 5~10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또 블록체인 혁신의 주축은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이 아닐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은행들의 관심 축소가 한 몫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 금융권의 블록체인 동향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의 이같은 기사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9월 바클레이즈, BBVA, 크레디 스위스, 골드만 삭스, JP 모건, 스테이트 스트리트, UBS 등의 서구의 대형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블록체인 투자를 하기로 한 R3 컨소시엄이 계속 활동을 하고 있으며, JP모건과 도이치 보르세 그룹 등 일부 대형 은행과 인텔, 후지쯔, IBM 등 대형 IT회사가 함께 참여해 리눅스 재단과 함께 진행 중인 ‘하이퍼렛져 프로젝트’ 등이 계속 연구 및 투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KB국민금융지주, IBK기업은행 등이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으며 본인인증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데 적용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9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트코인 거래소 ‘코인플러그’에 15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특히 코인플러그는 KB국민은행과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송금서비스의 기술검증을 완료하기도 했다.

또한 계열사인 KB국민카드와 KB저축은행은 블록체인 기반의 본인인증 서비스를 개발해 적용했다.

이 서비스는 근거리무선통신으로 카드를 스마트폰 등에 터치하면 블록체인 인증 네트워크를 이용해 본인인증을 하는 방식이다.

IBK기업은행은 한국 비트코인 거래소를 개설한 코빗과 상호협력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기업의 기술을 적용해 외화 간편송금, 문서 공증 등 은행 업무에 다양하게 적용할 예정이다.

한편 증권거래소의 신재룡 상무도 관련 세미나에서 “거래소도 블록체인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블록체인 활용 분야를 발굴하고 국내외 관련 기업, 해외 거래소 등과 파트너십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은행 및 금융업 자체에 긍정적이기만 할까?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전쟁에 참여한 아킬레우스처럼 금융회사들이 ‘혁신’의 이미지를 위해서 제살을 깎아내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운명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짧지만 영광스런 삶을 살거나 길지만 평범한 삶을 살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신이었지만 죽을 운명을 가진 아이를 낳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 아킬레우스의 보호를 위해 저승세계에 있는 스틱스 강물에 그를 담기까지 했으나, 여전히 테티스가 손으로 잡았던 발목은 그의 약점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아킬레스건으로 알려진 부분이다.

어찌됐든 트로이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리스의 영웅들은 모두 이 전쟁에 부름을 받았다. 아킬레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테티스는 아들의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소녀처럼 옷을 입혀 숨긴다.

덧붙여 아킬레우스의 용맹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함락을 위해 아킬레우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신탁까지 받은 상황이어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재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디세우스는 여장을 한 아킬레우스를 방물장수로 위장해 칼자루 하나를 꺼내 찾아낸다.

소녀들 틈에 있던 아킬레우스가 오디세우스가 꺼낸 칼과 방패를 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을 수도 있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트로이전쟁에 참전한다.

#은행의 운명은?
은행들도 아킬레우스와 비슷한 운명을 걷는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기술과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세상에 접어들어 은행은 점차 아킬레우스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넷츠케이프 창업자이자 벤처캐피탈리스트 마크 앤드리슨은 연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은행의 해체’를 주장한 바 있다.

금융거래는 숫자에 불과하며 정보에 지나지 않는데 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기 위해 10만 명의 인력이 맨해튼 빌딩 숲에서 거대한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처리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다는 것이 해체의 이유이다.

전직 IMF의 이코노미스트이자 MIT 교수 사이먼 존슨도 올 3월 ‘프로젝트 신디게이트’지에 ‘대형은행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발표했다.

존슨 교수의 주장은 마크 앤드리슨 보다 더 강화됐고 구체적이다.

바로 최근 금융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블록체인’이 은행을 종말에 이르게 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10여개의 초대형 은행들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데, 현재 금융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에 의해 대형은행들은 공룡들이 사라진 것처럼 자취를 감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이 그 시대의 여는 시작점이며 “금융부문의 탈중앙화 전략을 통해 금융 시장의 민주화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기술이 “대형은행의 가치를 무력화할 잠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죽음의 운명을 알면서도 전쟁터를 찾아갔던 아킬레우스처럼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혁신’의 이미지와 생존을 위해 역설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블록체인에 투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