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 vs. 〈2001 스페이스오디세이〉의 ‘HAL’<이번호>
시리, 코타나 vs. 〈그녀〉의 ‘사만다’
휴보 vs. 〈오토마타〉의 ‘오토마타’
유진 vs.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

1957년 6월, 과학기술에 대한 미국의 자존심이 무너진다. 세계 최초로 추진하던 대륙간탄도탄 실험이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체면을 구기는 일은 두 달 뒤에 벌어졌다. 지금은 사라진 나라 소련이 세계 최초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그로부터 12년간 미국은 매번 소련의 뒷북을 쳤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1957년 10월)는 물론 우주로켓을 통한 달 발사(1959년 1월). 최초의 유인 인공위성 발사(1961년 4월), 최초의 금성 착륙(1966년 3월) 등 우주개발과 관련한 모든 타이틀은 소련이 차지한다.

구겨진 자존심을 되살린 것은 1969년 7월, 세계 최초의 달 착륙 기록을 갖게 된 아폴로 11호가 발사에 성공하면서 부터이다.

# 1968년이 갖는 의미
한 축에선 이념을 두고 냉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1968년, 또 다른 축에선 미국과 유럽대륙을 혁명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세계사적 변환기였다.

혁명은 생각의 변화는 물론 사회를 지배하는 관습 체계에 대한 대규모 변환도 뒤따른다.

그 변화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1968년, 빌 게이츠는 자신의 학교(레이크 사이드)에서 컴퓨터(GE사의 ASR-33)를 처음 만난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으로 창업한 폴 알렌과도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된다. 스티브 잡스도 1968년 창간되어 당시 청소년들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하던 잡지 ‘전지구적 카달로그(whole earth catalog)’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 영향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도 반영된다.

“Stay hungry stay foolish.(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이 대목은 ‘전지구적 카달로그’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던 문구다. 동갑내기 두 사람의 당시 나이는 13세였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등장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우주를 두고 미국과 소련이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컴퓨터 업계의 기린아들은 처음 컴퓨터의 세계를 접했던 시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를 개봉한다.

SF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현실에서의 치열한 우주경쟁을 반영하듯 목성을 탐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중심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영화 속 탐사선의 이름은 ‘디스커버리 호’다.

이 우주선의 주 컴퓨터 HAL9000은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컴퓨터.

이 컴퓨터 ‘HAL’의 이름은 ‘발견법적으로 프로그램된 연산 컴퓨터(Heuristically Programmed ALgolithmic Computer)’의 줄임말이다.

영화 속에서 HAL은 사람과 자연어로 이야기할 수 있으며,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고, 입술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으며 그림을 비평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의 감정을 읽거나 추론할 수 있으며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사람마냥 애원하기도 한다.

이처럼 뛰어난 성능을 가진 HAL은 영화 속에서 우주선을 제어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전원을 끄려는 우주 비행사들을 죽이는 등 강한 ‘인공지능’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넓은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가?”)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같은 캐릭터를 창출한 것이지만 영화에서 처음 만나는 인공지능의 부정적인 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 디스토피아적 영향을 미친다.

#HAL과 IBM
HAL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 것 같다.

사람들은 HAL이 알파벳 순서를 따지면서 당시 트랜지스터 컴퓨터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던 IBM은 연상해낸 것이다.(IBM의 철자를 하나씩 앞당기면 HAL이 된다)

물론 이같은 논란이 벌어지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나 원작자인 아서 클라크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관련성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당시 IBM은 컴퓨터의 대명사였으며 정보기술 업계의 대표 주자였고 사관학교이기도 했다.

1970년 말 ‘포춘’ 500대 기업의 CIO의 절반 이상이 IBM 출신이었으며 60개가 넘는 회사의 이사회 맴버에 IBM 출신이 포진하고 있었다.

IBM의 성공도 눈부실 정도였다.

50억 달러를 들여 개발한 ‘시스템/360’(1964년 발표)은 발매 2년 만에 개발비용을 회수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시스템/360’은 IBM을 컴퓨터 시장의 부동의 1위를 유지시켜 줬으며 자신은 컴퓨터 산업의 대표 키워드로 불리게 된다.

우주를 두고 미국과 소련 간의 경쟁을 벌이던 시절, IBM은 높은 성장을 유지하면서 미국 최고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생산성 향상의 주역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의 역사가 IBM의 역사이듯이 ‘인공지능’의 역사도 IBM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56년 수학자 존 매카시의 주창으로 다트머스 회의가 열린다.

이 행사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고, 당시 과학자들은 인간이 힘들어하는 수학계산을 컴퓨터가 훌륭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수학과 체스게임에 적용하기로 한다.

그 영향을 받아 첫 도전에 나선 컴퓨터 회사가 IBM이다. 1989년 IBM은 체스 전용 컴퓨터 ‘딥 소트(Deep Thought)’를 개발한다.

물론 단판 승부을 벌인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의 승리로 끝났지만,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IBM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1997년 IBM은 새로 개발한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를 게리 카스파로프와 대결시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다. 2승 1패 3무의 성적이었다.

이같은 딥 블루의 전통은 지난 2011년 미국의 유명 퀴즈쇼(제퍼디)에서 역대 최고의 퀴즈 왕을 무릎 꿇게 한 ‘왓슨’으로 이어진다.

# 왓슨, 어디까지 왔나
현재 왓슨은 자연어 처리와 가설 생성과 검증, 기계 학습 등의 기술로 구현돼 있다.

특히 언어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질문을 처리하는 방식은 사람이 사고하는 구조와 똑같다고 IBM측은 설명하고 있다.

현재 왓슨이 사용되고 있는 곳은 은행과 병원 등이다.

은행은 지난 2012년 시티, 싱가포르DBS, ANZ, 캐나다 로열은행 등이 도입한 데 이어 올 초부터 일본의 주요 은행들이 현업에 적용시키고 있다.

시티은행의 경우,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이용 데이터와 고객의 거래 내역을 취합, 분석해 고객 파일을 만들어 대출 상담에 적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DBS와 ANZ, 캐나다로열은행 등은 은행이 가지고 있는 상품과 고객 정보를 연결시켜 투자자에게 최적의 상품을 제안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미쓰이 스미토모, 미즈호, 미쓰비씨 도쿄 UFJ 은행 등의 일본 은행도 콜센터에 적용시켜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을 추천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방식은 콜센터 상담원이 고객과의 응대 사항을 입력하는 동안 ‘왓슨’은 최적의 답안을 찾아 화면에 표시하고 상담원이 이를 활용, 고객에게 최적의 조건을 상담하는 구조다.

또한 미즈호 은행의 경우는 최근 발매돼 화제가 되고 있는 감정인식 로봇 ‘페퍼’와 연계시켜 점포를 방문한 고객에게 최적의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데까지 적용업무를 확장시키고 있다.

미국의 여러 암센터 병원에서는 1초에 80조 번에 달하는 연산능력과 1초에 책 100만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왓슨’의 능력을 의사의 업무에 적용시키고 있다.

우선 암 진단과 최적의 치료법 등을 찾아내 의사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네트워크로 묶인 병원의 막대한 임상 데이터를 분석시켜 최적의 치료계획을 세우는데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 왓슨의 미래와 한국에서의 왓슨?
현재 IBM은 지난해 인간의 두뇌구조와 유사한 시냅스 칩을 개발한 상태다.

이 칩은 인간의 두뇌처럼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100만개의 뉴런과 2억5600만개의 시냅스로 구성되어 초당 460억 번 시냅스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IBM은 이 칩이 인간의 뇌 중 대뇌피질처럼 소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왓슨’은 좌뇌(수리 및 연산)의 역할을, ‘시냅스 칩’은 우뇌(감각, 운동, 인지 등)의 역할을 담당시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뇌처럼 작동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구글의 창립자인 페이지와 브린은 지난 2002년 한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궁극의 검색엔진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말하는 슈퍼컴퓨터 ‘HAL’을 닮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인수하는 등 로봇 관련 기업을 모두 9개 보유한 구글의 궁극적 모델이 ‘HAL’이듯, IBM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사고하는 ‘인공지능’을 꿈꾸고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자연어의 완벽한 처리는 물론 소리에 대한 완벽한 인식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상용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를 학습하고 인지해야 한다.

한국에서 ‘왓슨’의 성패 역시 한글화가 가능하냐에 달려 있다.

이와 함께 사람이 가진 특성 중 비언어적 특성(제스추어 및 습관적 행동 등)이 제공하는 막대한 정보를 어떻게 학습시키느냐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어찌됐든 ‘인공지능’의 시대는 매우 빠르게 우리 주변에 다가와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 말이다.

<김승호 BI코리아 편집위원>skylink999@gmail.com